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 사이에서
로마서 7:7-25
📖 성경 본문
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9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 묵상 도우미
속사람(22절) 여기서는 성령 안에서 새롭게 된 마음으로 본다.
📝 오늘의 말씀 요약
율법으로 죄를 알게 되어 죄는 살아나고 나는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죄 아래 팔린 나는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합니다. 내 속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죄의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이깁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 내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 해설
율법에 대한 변호 (7:7~13)
율법은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한 하나님의 법입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해 줍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탐심의 예로 설명합니다. 탐심은 외적 행동이 아니기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습니다. 누군가 탐심을 품었다고 해서 처벌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러나 십계명은 탐심을 죄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탐심이 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탐내지 말라는 선한 율법’이 타락한 인간 안에 온갖 탐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입니다. 율법은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가 타락했기에 선한 율법이 우리 안에서 죄를 일으키는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율법은 인간의 죄성을 드러내 하나님 은혜를 갈망하게 합니다.
율법의 기능은 무엇인가요? 율법이 분명히 금하는 것인데도 내 마음에서 끊어 내지 못하는 죄는 무엇인가요?
율법이 지닌 연약함 (7:14~25)
율법은 거룩하지만, 우리를 거룩하게 변화시키지는 못합니다. 율법은 마치 거울과도 같습니다(약 1:23). 거울을 통해 우리는 어디가 얼마나 더러운지 알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더러운 우리를 거울이 깨끗하게 씻기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며 살기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그 원대로 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면서도 죄를 짓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욕구가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죄의 욕구에 굴복해 죄에 끌려다닙니다. 바울은 이런 비참한 자신을 누가 구원해 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율배반적인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했나요? 육신의 욕구에 굴복해 죄를 지을 때 내 마음은 어떠한가요?
🙏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느라 곤고해 탄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온전히 붙들려 거룩하게 되기를 갈망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에 순간순간 저를 비추어 보며 바로 세워 죄에 끌려다니지 않게 하소서.
🖋 묵상 에세이
압도적인 힘
기독교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죄를 이겨 내는 종교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죄를 이기시는 종교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심지어 이제는 내가 죄와 싸우는 것이 아니다. 내 안의 그리스도께서 싸우신다.”
1941년은 영국 역사상 매우 어두운 시기 중 하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양상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자, 영국인들은 매일 독일의 침공에 대한 공포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12월 7일 주일 아침,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했을 때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는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에게 “우리는 모두 한배를 타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처칠은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영국은 살 것이다.…압도적인 힘(미국)을 단지 적절히 배치만 하면 되었다.…나는 승리에 대한 확신과 감사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어 단잠을 잤다.” 무엇이 처칠의 태도를 절망에서 소망으로 바꾸었는가? ‘압도적인 힘’이 자신 편에 섰다는 확신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원 사역, 부활, 성령의 선물이야말로 우리에게 약속된 압도적 힘이다. 그래서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는 탄식 앞에서도 기쁨으로 답할 수 있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 7:25). 죄는 실질적이다. 하지만 하나님 은혜의 능력도 더없이 실질적이다. 오직 성령 안에서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라.
모두의 질문 / J. D. 그리어, 두란노
📌 한절 묵상
로마서 7장 24~25절 | 구원받은 성도도 여전히 갈등합니다. ‘곤고한 사람’이란, 거듭났지만 죄성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완전한 승리가 주어지는 그날까지 우리는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는 갈등 상황에 놓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갈등 때문에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통해 의롭다 하시는 은혜를 받았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죄 된 본성과의 싸움 끝에는 구원과 영생이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하나님 없이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죄로 물든 성향을 돌파할 어떤 방편도 창조할 수 없다. – 세스 루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