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수기 19:11-22 / 정결함을 사모하는 거룩한 공동체
📖 성경 본문
11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12 그는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잿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할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려니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냥 부정하니
13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어질 것은 정결하게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하게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대로 있음이니라
14 장막에서 사람이 죽을 때의 법은 이러하니 누구든지 그 장막에 들어가는 자와 그 장막에 있는 자가 이레 동안 부정할 것이며
15 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아니한 그릇은 모두 부정하니라
16 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은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면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17 그 부정한 자를 위하여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불사른 재를 가져다가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고
18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
19 그 정결한 자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그 부정한 자에게 뿌려서 일곱째 날에 그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그는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저녁이면 정결하리라
20 사람이 부정하고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회중 가운데에서 끊어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하게 하는 물로 뿌림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부정하니라
21 이는 그들의 영구한 율례니라 정결하게 하는 물을 뿌린 자는 자기의 옷을 빨 것이며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22 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할 것이며 그것을 만지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 오늘의 말씀 요약
✅ 본문 해설
시체로 인해 부정해진 경우 19:11~13
죽음은 죄의 결과이기에 시체와의 접촉은 부정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시체를 만진 자는 7일 동안 부정해집니다. 이때 암송아지 재를 넣은, 정결하게 하는 물이 사용됩니다. 부정해진 사람은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정결하게 하는 물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부정한 채로 있으면 하나님의 성막을 더럽히는 것이기에 이스라엘에서 끊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부정함을 개인의 문제로만 여기지 않으시고, 공동체 관점으로 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공동체의 정결함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시체를 만져 부정해진 자가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었나요? 개인과 공동체의 정결함을 위해 내가 힘써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정결 예식 절차 19:14~22
사람이 장막에서 죽으면, 그 안에 있는 자든 그 안에 들어가는 자든 모두 부정해집니다. 들에 나가 있다가 죽은 자나 무덤에 몸이 닿은 자도 부정해집니다. 부정하게 된 자를 위해 암송아지의 재를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아 정결하게 하는 물을 만듭니다. ‘정결한 자’(18절)가 우슬초로 장막과 모든 물건과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그 물을 뿌리고,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립니다. 셋째 날과 일곱째 날에 뿌리면 일곱째 날에는 정결하게 됩니다. 이 예식은, 제사장이 아니어도 누구든 ‘정결한 자’가 집행합니다. 제사장이라도 부정하게 되면 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부정한데도 정결 예식을 거부하면 성소를 더럽히는 것이기에 공동체에서 끊어집니다. 정결 예식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피 뿌림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날마다 정결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부정함을 씻는 정결 예식은 누가 집행할 수 있었나요? 내면이든 외면이든 내가 정결함을 회복할 일은 무엇인가요?
✅ 오늘의 기도
✅ 묵상 에세이
거룩한 선 긋기
요즘 젊은이들을 ‘메이비 세대’(Maybe Generation)라고 한답니다. 선택의 폭이 넓어져 결정을 못 내리는 애매한 세대라는 것이지요. 어린 시절, 뜻을 정해 우상의 음식을 거부한 다니엘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청년 시절에는 주일을 지키려 애쓴 사람의 이야기나 직장 회식에서 술을 거부한 사람의 신앙적 영웅담도 많았습니다. 요즘은 ‘술을 마시는 것이 죄인지, 술을 안 마시는 것이 신앙의 본질인지’를 이야기합니다. 세상과 경쟁하려면 주일에도 공부하고 일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무엇인가를 하고 말고는 신앙의 본질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준은 있어야 합니다. 다니엘이 ‘뜻을 정하여’ 죄의 길을 가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 삶의 기준을 거룩하신 하나님께 맞춰야 합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삶에 선명하게 그은 선이 있었습니다. 선을 긋는다는 것은 그 선을 지키기 위해 내 삶과 권리를 일정 부분 절제하고 포기하겠다는 말입니다. 악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명확하게 선을 긋고 지키지 않으면 거룩함의 능력이 설 자리를 잃습니다.
요즘 교회와 신앙인들이 세상에서 힘을 잃는 것은 거룩한 삶을 위해 명확히 선을 긋고 자기 것을 포기한 이야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아무것도 잃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우리 삶에서 포기했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거룩함을 위한 기준으로 단호히 결단하며, 참된 경건을 추구하길 기도합니다.
모든 날이 은혜스럽다/김병삼_ 두란노
✅ 한절 묵상
✅ 오늘의 명언
“주님에 대한 신실함을 저버린 모든 선택은 자신에게 결코 유익이 되지 않는다.”
– 리처드 램